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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게 그냥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터지겠지 싶었는데, 돌이켜 보면 그 기다림이 마냥 올바른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말 늦은 아이를 둔 부모가 먼저 살펴봐야 하는 건 아이의 입이 아니라 아이가 얼마나 '듣고 이해하는가', 그리고 우리 집 양육 환경이 언어 발달에 적절한가 하는 부분입니다.

수용언어부터 확인해야 하는 이유
아이가 말을 못 한다고 느낄 때, 많은 부모가 표현언어만 봅니다. 표현언어란 아이가 직접 입 밖으로 내는 말, 즉 단어나 문장을 산출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언어발달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건 그 이전 단계, 바로 수용언어입니다. 수용언어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능력으로, "기저귀 가져와", "코 어디야?" 같은 간단한 지시에 아이가 반응을 보이는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처음에는 우리 아이가 아무 반응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TV를 끄고 조용한 상황에서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을 건네 보니, 고개를 끄덕이거나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반응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말로 대답하지 않았을 뿐, 이해는 하고 있었던 겁니다.
24~30개월 기준으로, 수용언어가 가능하고 표현언어만 늦는 경우라면 전문가들은 조금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단어와 단어를 조합하는 시기는 평균 20~24개월이며, 이 시기를 기준으로 아이가 2주 단위로 할 수 있는 말이 조금씩 늘고 있다면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어휘폭발기, 즉 짧은 기간에 어휘가 급격히 늘어나는 시기가 평균보다 늦게 오는 아이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2세 전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30개월이 넘어 시작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수용언어 자체가 어렵고, 호명 반응(이름을 불렀을 때 돌아보거나 반응하는 것)이 일관되게 없으며, 눈맞춤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때는 더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아이에게 불리할 수 있습니다. 국립특수교육원에 따르면 언어발달 지연은 조기에 발견하고 개입할수록 예후가 좋습니다(출처: 국립특수교육원). 제 경험상, 이 부분을 너무 늦게 인식하면 부모도 아이도 불필요한 시간을 잃게 됩니다.
- 수용언어 확인: 간단한 지시에 고개 끄덕임, 손짓, 시선 이동 등 비언어적 반응이 있는지 살핀다
- 표현언어 확인: 2주 단위로 새로 사용하는 단어가 조금씩 늘고 있는지 기록해 둔다
- 즉시 전문 진단이 필요한 신호: 수용언어 자체의 어려움 + 호명 반응 부재 + 눈맞춤 현저한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때
- 이중언어 노출 중인 경우: 언어 지연이 나타날 수 있으며, 한 가지 언어로 기본 의사소통이 가능해진 뒤 두 번째 언어를 노출하는 것이 권장된다
양육환경이 언어를 막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 늦은 아이의 원인을 유전이나 발달 이상에서 먼저 찾는 경우가 많은데, 제 경험상 가장 먼저 들여다봐야 할 곳은 일상적인 양육 환경이었습니다. 언어발달 지연의 원인은 크게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병리적 요인으로 나뉩니다. 이 중 환경적 요인은 부모가 직접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가장 먼저 점검할 가치가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이 부분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면 바로 가져다주었고, 식사 시간에 TV가 항상 켜져 있었으며, 바쁘다는 이유로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게 해결됐으니, 언어를 사용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도와준다고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아이의 언어 촉진을 방해하고 있었으니까요.
이후에는 의도적으로 언어 사용의 필요성을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바꿨습니다. 언어 촉진이란 아이가 말을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치료사가 하는 전문 훈련과는 다릅니다. 가령 아이가 물을 원해서 울기 시작하면, 바로 주는 대신 "물 줄까?" 하고 천천히 말해 주고, 아이가 "무", "물" 처럼 짧은 소리라도 내면 즉시 크게 반응하며 물을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몇 주가 지나자 스스로 소리를 내어 표현하려는 시도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말 더듬는 아이의 경우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 더듬기는 발달성 유창성 장애의 한 양상으로, 아이가 생각의 속도를 말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할 때 나타납니다. 부모가 말이 빠르거나, 아이와 대화할 때 다른 일을 하며 건성으로 들어주는 경우 아이가 자신에게 집중해 달라는 의도에서 급하게 말을 뱉다가 더듬게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가 말을 더듬을 때 "천천히 말해"라고 지적했습니다. 지적은 자존감을 떨어뜨려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대신 부모가 먼저 천천히, 정확하게 발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이가 말할 때 눈을 맞추며 충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무발화 아동, 즉 의미 있는 단어를 전혀 산출하지 못하는 상태의 아이를 두었을 때는 발음의 정확성보다 소리를 내어 표현하는 행위 자체에 먼저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기 발음 습득에 유리한 소리는 ㅁ, ㄴ, ㅂ, ㅍ, ㅃ 계열의 자음으로, 입술을 사용하는 양순음입니다. "물"을 "암마", "아"로 표현해도 일단 소리를 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받아 주면 아이는 언어 사용에 대한 동기를 얻게 됩니다. 대한소아과학회도 36개월 이전 언어발달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부모의 언어 자극이 아이의 어휘 발달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소아과학회).
자주 묻는 질문
Q. 24개월인데 엄마, 아빠밖에 못 해요. 언어치료 바로 받아야 하나요?
A. 일반적으로 이 시기에 바로 언어치료가 필요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먼저 간단한 지시를 이해하는 수용언어가 가능한지 확인해 보세요. 수용언어가 가능하고 2주 단위로 표현이 조금씩 늘고 있다면 조금 더 지켜볼 여지가 있습니다. 단, 수용언어 자체가 어렵거나 호명 반응이 없다면 전문 기관 진단을 권합니다.
Q. 이름 불러도 잘 안 쳐다봐요. 자폐 증상인가요?
A. 호명 반응이 없다고 바로 자폐를 의심하기보다는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장난감에 집중하고 있거나 TV 소리가 클 때는 못 들은 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 보시고, 눈맞춤 어려움과 수용언어 문제가 함께 나타난다면 발달 전문기관의 정확한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Q. 전문가 상담은 아이 치료를 위해 가는 건가요?
A.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치료사가 아이와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지를 부모가 직접 관찰하고 일상에서 그 방식을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아이만 치료받고 끝내는 것보다, 부모가 언어 촉진 방법을 익혀 매일 적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Q.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노출하고 있는데 말이 늦어요. 관계가 있나요?
A. 이중언어 노출은 언어 지연과 관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어적으로 타고난 아이는 두 언어를 동시에 잘 습득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가지 언어로 기본적인 의사표현과 감정 표현이 가능해진 뒤 두 번째 언어를 노출하는 것이 권장됩니다. 3~5세 아이의 정서와 자존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언어 혼재가 심하다면 주 언어를 먼저 안정시켜 주세요.
Q. 아이가 말 대신 울고 떼를 쓰는데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요?
A. 즉시 원하는 것을 해결해 주면 아이는 언어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걸 학습합니다. 떼를 쓸 때는 "뭐가 필요한지 말해봐"라고 천천히 안내하고, 어떤 소리라도 냈을 때 즉각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리를 내어 표현했다는 경험 자체가 언어 사용 동기를 키워 줍니다.
결론
말 늦은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크게 바뀐 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습니다. 아이의 입만 쳐다보던 것에서, 아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제가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지로 시선이 옮겨졌습니다. 수용언어가 가능하고 표현이 조금씩이라도 늘고 있다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일상에서 아이가 소리를 낼 이유를 만들어 주고, 눈을 맞추며 천천히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 그리고 수용언어와 호명 반응에 뚜렷한 어려움이 보인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소아청소년과나 발달 전문기관의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