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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느 순간부터 주변에서 "우리 애 벌써 중학교 수학 한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저도 그 말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아이를 선행 수학학원에 보냈고, 6개월 뒤 아이의 수학 자신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직접 경험했습니다. 선행학습이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를 만드는 지름길인지, 제가 겪은 일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개념 이해 없이 진도만 나갔을 때 생기는 일

제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분수 나눗셈 문제를 풀다가 "엄마, 나누기는 뒤집어서 곱하면 되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3/4 ÷ 2/5 같은 문제를 내면 3/4 × 5/2로 바꿔서 척척 답을 맞혔어요. 저는 당연히 이해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왜 2/5를 뒤집어서 곱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아이가 한참 가만히 있다가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하래서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답은 맞히는데 분수 나눗셈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절차적 지식(procedural knowledge)만 있고 개념적 이해가 없는 상태입니다. 절차적 지식이란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정해진 순서대로 계산하는 방법만 아는 것을 말합니다.

거리·속력·시간 문제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겼습니다. '시속 60km로 2시간 30분을 달리면 몇 km?'라는 문제를 아이가 계속 헷갈려 했어요. 제가 "1시간에 60km면 두 시간 동안은?"이라고 풀어 물으면 바로 120km라고 답하면서도, 숫자가 조금만 바뀌면 또다시 공식부터 찾았습니다. 공식을 적어놓지 않으면 문제를 시작하지 못하는 모습, 그때 처음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습니다.

학원에서 중학교 과정인 문자와 식 단원까지 들어간 뒤에는 더 확실해졌습니다. 3x+2x=5x는 풀면서 "그러면 3x+2는 왜 5x가 아니야?"라고 물으니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문자가 같으면 숫자끼리 더한다'고 외웠을 뿐, 동류항(like terms)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동류항이란 문자 부분이 완전히 같아서 하나로 합칠 수 있는 항을 말합니다. 이 개념 없이 진도만 나간다면 다음 단원인 방정식에서는 더 큰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 공식을 외워 답은 맞히지만 "왜 이렇게 계산해?"라는 질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
  • 숫자나 문제 형태가 조금만 바뀌어도 처음부터 막히는 경우
  • 선생님이 없으면 혼자 문제를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
요약: 답을 맞히는 것과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다르며, 이 차이가 쌓이면 선행이 오히려 독이 됩니다.

 

수포자가 만들어지는 구조, 학원 진도의 함정

선행학습이 문제가 되는 건 개념 없이 진도를 뽑는 방식 때문입니다. 수학은 위계 구조(hierarchical structure)가 강한 과목입니다. 위계 구조란 이전 단계를 이해해야만 다음 단계를 배울 수 있는 수직적 연결 구조를 말합니다. 분수를 모르면 비율을 모르고, 비율을 모르면 함수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한 층이 흔들리면 위에 쌓인 것들이 함께 무너집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에서는 선행학습을 "성인의 도움을 받아 6개월 이상의 진도를 미리 배우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출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여기서 핵심은 '성인의 개입'입니다. 스스로 이해해서 앞서가는 아이라면 선행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교사의 도움 없이는 풀 수 없는 내용을 반복 훈련으로 끌고 나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학원에서는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끌고 가기 위해 문제 유형 암기 방식을 씁니다. "이 형태가 나오면 이 공식", "이 유형은 이렇게 푼다"는 식으로 패턴만 주입합니다. 그러면 잠깐은 점수가 오릅니다. 아이도 "나 이거 할 수 있어"라고 착각하게 되고, 부모도 학원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단원이 바뀌거나 응용 문제가 나오는 순간 완전히 막혀버립니다.

아이가 학원에서 소금물 농도 문제를 풀 때, 문제 위에 '농도=소금의 양÷소금물의 양×100'을 크게 써놓고 숫자만 집어넣고 있었습니다. 제가 "소금 10g에 물 90g을 섞으면 왜 10%야?"라고 물으니 바로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문제에서 물의 양이 아니라 소금물 전체 양이 주어지자 또 막혔습니다. 공식을 외웠을 뿐 농도의 의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때 '문제를 풀 줄 아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확실히 느꼈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 자료에서도 수학 학습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 개념 이해 없는 반복 문제풀이를 꼽습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결국 이해 없이 나간 진도는 어느 지점에서 반드시 막히고, 그 막힌 경험이 쌓여 수포자가 됩니다.

요약: 수학은 위계 구조가 강해 이전 개념이 흔들리면 선행한 내용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학원 진도를 멈추고 나서 달라진 것들

저는 결국 선행 학원을 그만두게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학교 진도에 맞춰 다시 공부하는 방향으로 바꿨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친구들은 중학교 것 하는데 나는 왜 이걸 다시 해?"라며 속상해했습니다. 그 마음이 충분히 이해됐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부분을 하나씩 다시 짚어 나가자, 문제를 혼자 끝까지 풀어내는 시간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습니다.

진도를 늦추면 불안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이가 "이 문제 나 혼자 풀었어"라고 말하는 횟수가 늘었습니다.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회복된 겁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어떤 과제를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학습 의욕과 직결됩니다. 이게 무너진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 붙어도 공부가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아이에게 "왜 이렇게 풀었어?"라고 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답을 틀렸더라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문제집에 동그라미가 가득한데 "왜 이렇게 계산했어?"에 "선생님이 이렇게 하랬어", "공식이 이거잖아"라는 말만 나온다면 진도를 늦추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선행학습 자체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이가 비례식 문제를 재미있어해서 중학교 문자식을 살짝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쓰면 더 간단하네"라며 흥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선행의 부작용이 아닙니다. 문제는 선행 자체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해도 진도부터 나가는 선행입니다. 부모가 경계해야 할 것은 선행 그 자체보다, 아이가 힘들어하는데도 '다른 아이들도 다 한다'는 이유로 계속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요약: 진도를 멈추고 개념부터 다시 잡자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도 돌아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선행학습은 무조건 나쁜 건가요?

A. 무조건 나쁜 건 아닙니다. 현재 학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아이가 더 알고 싶어 한다면 굳이 막을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이해하지 못한 채 공식과 유형만 외우면서 진도를 나가는 방식입니다. 아이가 배운 내용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Q. 아이 학원 진도가 학교보다 많이 앞서 있으면 어떻게 확인하나요?

A. 제 경험상 가장 빠른 방법은 아이에게 "왜 이렇게 풀었어?"라고 물어보는 겁니다. 자기 말로 설명하지 못하고 "선생님이 그렇게 하랬어", "공식이 이거야"라는 답만 나온다면 진도가 이해 수준을 앞서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원 숙제를 얼마나 힘들어하는지도 좋은 신호입니다.

 

Q. 선행 없이 학교 진도만 따라가면 나중에 불리하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에 그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선행이 도움이 된다면 그건 수학 공부 시간 자체가 늘어났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굳이 선행이 아니어도 현재 진도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추가 문제를 푸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었습니다.

 

Q. 수포자가 될 것 같다는 신호가 있나요?

A. 학원 가기를 반복적으로 싫어하거나, 숙제를 자주 빼먹거나, "나는 수학을 못해"라는 말을 스스로 자주 한다면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점점 어려워진다는 느낌이 쌓이면서 자기효능감이 낮아지는 게 수포자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흐름입니다. 이때는 진도를 낮추고 아이가 스스로 풀 수 있는 문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낫습니다.

 

결론

선행학습의 기준은 몇 학년 앞서 있느냐가 아니라, 아이가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느냐여야 합니다. 제 아이가 중학교 진도를 나가면서도 초등 분수 개념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던 것처럼, 진도표보다 지금 아이 상태를 먼저 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아이의 학교 진도와 학원 진도를 한번 비교해보시고, "왜 이렇게 풀었어?"라는 질문 하나만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그 대답에 모든 답이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ayOnGRhBeU